찬란한 조화의 가을 넘어 추억의 설경(雪景)으로, 그 청아한 정신이 담긴 매원 화백 수묵화전
찬란한 조화의 가을 넘어 추억의 설경(雪景)으로, 그 청아한 정신이 담긴 매원 화백 수묵화전
  • 정재헌 기자
  • 승인 2019.11.12 17: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3여 년 한국의 수묵화에 일익(一翼)을 다해 먹을 갈아 온 올곧음을 산사의 풍경에 담다”
매원(梅園) 김정엽(金正葉) 화백
매원(梅園) 김정엽(金正葉) 화백

전남고흥 태생으로 지난 43여 년 간 광주에서 지내온 김 화백은, 수묵의 향기에 취해 붓을 들고 먹을 갈아 숱한 수묵담채화 대작으로 내면의 예술혼을 표출해 왔다. 현재까지 김 화백은  300호가 넘는 대작, 프랑스, 영국, 미국, 독일, 홍콩, 스웨덴, 브라질을 비롯한 세계 화단의 찬사를 받은 독보적인 족자그림들로 깊은 인상을 남겨왔다. 그러한 김 화백이 11월 6일부터 12일까지 인사동 한국미술관 3층 1,2관 특별초청 수묵화전에 자신의 곧고 청아한 정신이 담긴 수묵담채화 100여 점을 소개한다. 정겨운 고가(古家)로 향하는 길에 묻어 둔 ‘가족애’가 그림마다 따스하게 핀 매화꽃의 조화로움 속에 덧입혀진 김 화백의 그림은, 눈송이 같이 세상을 하얗게 덮으며 거룩한 기원으로 승화시키는 어머니의 마음처럼 올 가을의 감성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송(松), 암(巖), 계단으로 메운 여백을 가르며 나타난 작고 든든한 뒤태, 그리고 잔잔한 여운

150여 회 단체전과 12여 회의 개인전을 치르며 서울시장상, 스웨덴 특별초대전, 그리고 파리전 K-ART Golden Critic Award, 브라질월드컵 기념초대전 최우수상, 한중국제미술대전 특별상을 비롯해 국내외 화려한 수상경력에 빛나는 수묵화 예술가, 매원 김정엽 화백이 올 가을 특별초청 수묵화전 <고개 고개 넘어 보니>에 100여 개 작품을 선보인다. 김 화백을 초청한 인사동 한국미술관 이홍연 관장은, 그의 작품을 일컬어 무한경쟁의 시대상황에서 삶의 여유를 회복하며 추억의 편린을 찾게끔 하는 메시지를 준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처럼 김 화백의 작품들은 산사(山寺)와 수림(樹林)의 조화와 소나무의 올곧음, 계절이 바뀌는 가을의 감수성을 풍기는 사찰(寺刹)과 고가(古家), 그리고 웅장함 대신 포근함을 노래하는 계곡과 폭포의 묘사로 정겨움을 자아낸다. 그 외에도 고향의 그리움을 나타내는 사람의 조그마한 뒤태, 불공을 드리는 노모의 애끓는 정성을 나타내는 숲 속 깊은 계단, 잊고 지낸 추억을 떠올리게 만드는 설경(雪景), 봄의 찬란함, 가을의 단풍과 매화의 적(赤)색 빛을 조화롭게 그려내는 김 화백은 ‘송(松), 암(巖)의 한국화가’로 불리기도 한다. <낙산사>, <폭포의 자랑>처럼 자연물의 생동감을 다룬 그림을 꾸준히 선보인 김 화백은 일반적인 호수와 다른 족자그림, 싱그러운 <지리산 봄의 계곡>처럼 청송과 바위 속에 숨겨진 맑고 깨끗한 폭포의 알찬 흐름을 위에서 아래로 명징하게 보여주며, 반대로 <가을속의 소나무>에서 황금색으로 물들어가는 신록과 사철 록빛을 머금은 청송의 당당한 자태를 아래에서 위로 묘사하며 ‘보는 것이 아니라 짚어 읽어나가는’ 두루마리 족자 그림명인의 역량을 아낌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리운 아버지가 계시는곳
그리운 아버지가 계시는곳

우리 고유문화의 조화와 가족애, 기원과 그리움으로 풍경을 채운 인간의 따스한 서사

꽃과 나비의 화가, 정경부인 신사임당에게는 어머니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은 율곡과 우, 매창이 있었다. 김 화백에게는 ‘장한 아내’이자 ‘위대한 어머니’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는 남편, 꼬까옷을 입을 때부터 김 화백의 손을 잡고 스케치 활동을 따라다니다 이제는 어엿한 성인이 되어 김 화백을 삶의 롤 모델로 삼고자 하고 경외심을 표하는 네 자녀들이 있다. 이번 개인전을 계기로 한국 현대미술발전에 더욱 큰 공헌을 기원하는 김 화백의 가족은 여류 한국화가의 작품세계에서 보다 다른 이유에 천착하는 세간의 시선을 피해 오직 그림을 통한 예술혼을 표출해내도록 도와 준 또 다른 지필묵 같은 존재였다. 그래서 김 화백의 한국화에 대한 열정 속에는 은연중에 가족애와 고유 전통이 담겨 있는데, 도끼를 갈아 바늘도 만들어 낸다는 <마부위침(磨斧爲針)>에서는 대송과 초가, 장독, 지게를 멘 가장을 채색 없이 농담으로 이뤄진 원근과 색감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100호 대작 <기다림>의 연정을 가족애로 바꾼 듯한 <그리운 아버지가 계시는 곳>은, 소나무와 바위를 실제보다 광활하게 표현해 작은 사람의 뒷모습에서 오히려 행로의 목적과 그리움의 의지를 더욱 실감하게 한다. 또한 적록(赤綠)의 대비와 그림 전체를 뒤덮어 내리는 흰 눈이 있는 ‘연달은 행복함’ <명야복야(命也福也)>는 함박눈을 맞는 아기 어머니의 행복한 귀가 길을 작은 뒷모습이 아닌 그림의 주역이자 앞모습의 생생한 표정으로 묘사하고 있다. 화선지와 눈의 색이 같기에, 비움을 채움으로 만든 한국화의 미덕이 담긴 그림도 있다. <우리집>과 <해질녘 귀가길>이란 작품은 흰 화선지의 여백이 설산의 아름다움을 이끌어내, 보는 이를 함박눈에 뒤덮인 설국으로 초대하여 한국화의 소나무 필법과 서양화의 도트 컨실링이 어우러진 눈의 정경으로 매혹시킨다.

나무와 산이 원근으로 따로 떨어진 듯 존재하는 수묵, 세상에 드러난 몽유도원의 고즈넉함

보물 제728호로 지정된 ‘권선문’을 남긴 조선시대 최초의 사찰채색화가인 순창 설씨부인처럼, 김 화백은 예스러운 소재에 천착하면서도 주제의식이 뚜렷하며 선명한 색감 표현에 강하다. <머물고 싶은 풍경>은 운율과 농담이 시원하고 세부표현이 섬세한 수묵담채 풍경화로, 100호보다 큰 대작에 진경산수와 작은 인물, 풍경, 해경(海景)까지 집대성된 현대식의 몽유도원을 연상시킨다. 진한 소나무, 먼 암자의 처마 기왓장 한 짝까지도 세필로 정밀 묘사하여 강조함으로서 김 화백의 혼이 담긴 고즈넉한 분위기를 드러낸다. 이러한 파격이 드러난 작품이 암자의 계단에 당도한 행자의 뒷모습을 묘사한 <경치가 좋아서>이다. 또한 한 가지 사물에 하나의 채색법을 사용하여, 서로 다른 도색으로 각 사물의 원근이 구분되어 수려한 개성을 만드는 김 화백의 기법은 <먼 산 아래 대웅전>처럼, 불화(佛畵)와 수묵의 정체성이 살아있는 수채와 세필기법으로 또렷한 인상을 준다. 나무와 풀잎의 묘사에 강한 김 화백은 바위의 결, 잔잔한 바다 물결 표현으로 흡사 동양자수나 태피스트리자수 같은 한국수묵화의 서정성을 해외에 알려 그 우수성을 주목받기도 했는데, 평생 그림에 대한 열정으로 긴긴 세월을 보내왔으면서도 아직 만족할만한 작품은 그려내지 못했다는 김 화백의 이야기가 믿겨지지 않을 만큼, 그 세부묘사에 들어간 노고와 공은 실로 압도적이기까지 한다. 이번 전시회를 감상하는 이들이 화폭에 담긴 청송의 짙은 고결함으로 옛 추억을 떠올리고, 작품 하나하나에 깃든 김 화백의 혼과 소통하며 더 이상 쓸쓸하지만은 않은 이 가을의 깊은 감흥에 젖어 2019년의 마지막 설경을 맞이할 수 있길 바란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