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막사발 전통의 도예 기술 이어받아 곡(曲)의 형상과 자연에 가까운 빛깔로 마음을 사로잡다
조선 막사발 전통의 도예 기술 이어받아 곡(曲)의 형상과 자연에 가까운 빛깔로 마음을 사로잡다
  • 정재헌 기자
  • 승인 2019.10.11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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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하고 자유로운 상주백토와 적송의 흔적에 한국인의 입김이 배어 더 아름다운 찻그릇”
‘덕천요’ 도예가 덕천(德泉) 이병권 작가/명지대 객원교수
‘덕천요’ 도예가 덕천(德泉) 이병권 작가/명지대 객원교수

사람의 장딴지처럼 길쭉하게 빚은 내화벽돌을 만 개로 엮어 가마를 만들었다는 의미의 망댕이가마는 경사진 오름길에 짓는다. 그래서 불의 휘돌아오름이 부드럽고 서로 다른 열기를 섞어주기에 100요 100색 모두 다른 빛깔로 사기를 소성해 내는 전통장작가마라고 한다. 지난 30년 간 심플한 품격을 갖춘 자신만의 도자기들을 제작해 해외에 널리 소개해 왔으며, 왕에게 진상해 온 최상품 상주백토로 만든 상주분청사기그릇의 고향, 경북 상주로 3년 전 이전한 도예가 덕천(德泉) 이병권 교수는 전통적인 망댕이가마 소성방식에 따라 차를 마시는 다기(茶器)를 빚고 있다. 이 교수는 화려한 도색문양 대신 불의 섭생과 산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유약이 그려 낸 산수(山水)화를 추구한다. 이 교수는 순수함과 소박함이 도자의 가장 큰 매력이며, 도자강국 중국, 일본과 차별화될 만큼 좋은 원료로 만든 한국 도자의 내면을 상징하는 것이라 묘사한다. 

땅과 흙, 풀과 나무가 전통 망댕이 장작가마 속에서 이뤄 낸 푸르고도 붉은 기운의 도자
중국 청화백자의 영향을 받은 18세기 독일 마이센, 프랑스 세브르 포셀린은 다기(茶器)이면서도 도자 위의 화려한 명화를 추구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의 도자들은 왕실과 귀족의 품위로 박물관을 지키는 분청사기와 조선백자 외에도, 검소한 선비들의 책장과 활기 넘치는 서민들의 개다리소반 위를 섭렵하는 도기의 다채로운 매력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망댕이가마를 연구하고, 푸른 유약의 흐름이 산과 계곡을 이루어 찻물이 찻그릇에 스며들면 아름다운 연못이 된다는 다기 도자로 유명한 ‘덕천요’의 도예가 이병권 교수는 `90년도에 도자를 시작한 이래, 30년 간 문양을 더욱 소박하게 줄이면서 오래 될수록 정감 가는 도자의 형상을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이 교수는 브라운 면도기의 디터 람스, 아이폰의 스티브 잡스처럼 단순하고 순수하면서도 기본에 충실한 디자인과 개선된 아이디어로, 오로지 전통 가마의 소성력으로 구워 낸 도자를 만든다. 대학원 전공인 심리상담치료에 도움이 되는 미술심리치료와 대학교 때 잠시 고시공부를 하다가 연이 닿은 문경 원적사 혜진 주지스님의 인연으로 경북무형문화재인 대한민국 도예명장 도천 천한봉 선생을 사사하고 전통도예가가 된 이 교수는  세종실록지리지의 토산조에 나오는 상주인화문분청사기를 만들기 위하여  직접 산에서 흙을 채취하고 수비과정을 거쳐 전통 망댕이 장작가마에서 소성하여 흙의 질감을 살린다고 한다.

그가 경북의 사과나무, 가을걷이에 나온 콩, 문경 오미자줄기, 깨를 태우고 남은 재를 곱게 걸러서 도석과 섞은 유약을 만들어 바르고, 망댕이가마에 송진이 진하게 배어나오면서 잔재가 적게 쌓이는 적송으로 불을 때면, 현대의 대량복제형 전기/가스가마와 달리 자연스런 화기로 붉음에서 푸름까지 오묘한 색이 나타난다. 그리고 불의 흐름에 따라 색의 농도와 질감까지 달라지며 유약의 흐름이 표면에 새겨지기에, 이는 오로지 장작가마에서만 만들 수 있는 순수한 고태미라고 할 수 있다.

재를 걸러 내 도석과 섞은 유약의 오묘한 빛깔로 해외에 우리 가마와 도자 이름 알려
층층이 쌓는 망댕이가마이기에 불의 은근한 화력과 조화로움 속에서 구워져 나온 도자를 보면 불이 들어오고 도자가 놓였던 자리까지 알 수 있다는 이 교수는, 예술을 이뤄내며 아름다움과 내면의 생각을 반영하는 도자 일이 한때 도전했던 법조인보다 적성에 잘 맞는다고 한다. 젊은 시절에는 토련기와 혼합기, 물레를 장만하고 가마를 찾는 것도 어려웠던 적이 있었지만, 차츰 팬 층이 넓어지고 그의 작품을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도천 선생의 전시를 도와주다가 덕천요 특유의 정갈함으로 교토 노무라미술관장의 눈에 들어 일본 현지작가들도 전시하기가 힘들다는 노무라 미술관에서 첫 해외개인전을 열면서, 뒤이어 2017년 하시모토박물관 개관100주년 기념전에 한국도예작가 최초로 초대전시를 한 달 동안 여는 등 해외에 발을 넓힌 이 교수는 다수의 국제미술전에 출품하여 국제예술 대상, 동북아3개국 국제미술전 최우수작가상을 수상한다. 또한 미국 위스콘신주립대학교가 매년 1개국을 선정해 작가를 초대하는 행사에서 2017년 한국 차례가 돌아와 초대작가로 선정돼 초대전을 열었으며, 이탈리아 밀라노, 키르키즈스탄 비쉬켁 국립미술관, 중국 절강성 푸토문화원, 라오스 국립미술원, 일본 가나자와 영빈관, 몽골 국립미술관 등 세계 각국 초대전에서 주목을 끌기도 하였다.

1개월 일정으로 전시와 세미나, 도자기 제작을 거친 절강성 용천청자 국제아트센터 행사와 중국 길림성 광복 70주년기념 미술전 등을 계기로 중국 바이두에 한국 아티스트 자격으로 항목이 신설되기도 한 이 교수는, 해외 도자박물관을 거치면서 서양에 중국, 일본 도자문화만 주로 알려진 점을 아쉬워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도 해외활동에 치중하고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고자 최근에는 전시회 참가를 위해 새로운 도자 작업에 한창이라고 한다.

9월 모스크바 전시 시작, 오는 2022년까지 세계 각국 전시회와 도자특강 일정 잡혀
한편 (사)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인 이 교수는 ‘도자기=차이나’라는 중국을 이어 천년역사를 지닌 한국도자, 무쇠솥 가마에 밥을 지어먹는 우리 문화 덕분에 공존한 한국가마의 인지도가 이를 이어받은 일본보다 부족하다고 한다. 서양인들이 도자를 배우러 자주 유학하는 일본의 ‘카마’는 사실 우리의 ‘가마’이며, 러브콜이 있던 일본, 중국을 두고 키르키즈스탄 츄이코바국립예술대학교 초빙교수로 간 이유에 대해 가마를 ‘페치카’라 부르는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이라 설명하는 이 교수이다. 그래서 그는 그의 시리즈 전시인 <달과 사발전>으로 해외 작품 활동을 하며 지난 20여년 동안 한국 도자의 다양한 정체성과 소성방식의 오랜 역사성을 알려 왔다.

또한 우리의 토종 가마에서 온도가 낮을수록 유약 시유 부분이 더욱 진해지는 특성을 살려, 조선분청사기의 다양한 분청기법을 더욱 기발하게 해석하며 품격 있는 자연의 색채를 더하는 자신의 매력을 국내에도 어필하고 있다. 2015년 대한민국향토문화미술대전 종합대상을 받고 상주에 자리 잡은 뒤, 현지의 흙에 완벽히 적응해 2018년 제5회 경남찻사발전국공모전 대상, 24회 한국신지식상에 선정된 이 교수는 여전히 1천 300℃의 가마를 열 때마다 처음 도예를 시작하던 설레임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다. 그는 초고온에 녹아 유리질화가 되는 재이기에 온도를 유지하는 일은 섬세한 작업이고, 송진이 많은 적송을 쓰는 것도 초고온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한다. 그런 이 교수의 작업에 대한 열정은 오는 2022년까지 해외전시가 계획되어 있다.

9월 24일부터 10월 1일까지 모스크바 Gostiny Dvor 미술관 개인전으로 러시아에 다녀왔고, 현재 작품활동에 매진하여 12월 중순 미국 위스콘신주로 출국해 전시회와 특강 일정을 치를 예정이다. 내년 8월에는 몽골 국립미술관 초대전을 치르고 일본으로 날아가 하시모토박물관 전시회를 개최할 것이기에, 이 교수는 소개될 새로운 작품들을 많이 기대해 달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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