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처럼 친숙한 아방가르드, 자연 속 미술박물관으로 국내에 첫 선 보인 ‘뮬러리’
카페처럼 친숙한 아방가르드, 자연 속 미술박물관으로 국내에 첫 선 보인 ‘뮬러리’
  • 정재헌 기자
  • 승인 2019.10.11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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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 개념보다 현실에서 실천함을 말하는 예술이기에 아이들 위한 실습 공간 도입히다”
노랑다리미술관 손일광 관장
노랑다리미술관 손일광 관장

자연의 혜택을 받아 스포츠와 관광, 맛집으로 특화된 지역인 경기 가평군에서 종합미술 전시체험장으로서 강렬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노랑다리미술관이 지난 5월자로 개관 4주년을 맞이했다. 대한민국 남성복 디자이너 1세대이자 첫 번째 남성복 MD로 1970년대부터 의상 분야에서 가장 트렌디한 행보를 보여 온 인물. 노랑다리미술관의 손일광 관장은 패셔니스타 이전 공학도였던 경력을 살려 과학과 미술의 공학적 조화를 추구한 20년 프로젝트의 후반부를 맞이하고 있다. 위대한 과학자를 위한 헌사를 담아 새로운 작품을 시도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아이들이 생생한 예술을 체험하도록 실습공간을 만들어 눈높이 도슨트를 자처한 손 관장의 꿈은 노랑다리 주변의 남은 공간을 자신의 기발함이 살아있는 창작품으로 채우는 것이다. 

아티스트이자 프로듀서, 큐레이터를 겸한 아방가르드 예술가, 설치미술의 생활감을 이루다

2016년 5월 15일 경기 가평군에 개관한 카페형 미술박물관, 3천여 평의 대지에 건평 150평으로 식물원에 손색없는 조경과 전시공간을 갖춘 노랑다리미술관은 개관이래 총 5개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실내외의 볼거리와 즐길 공간을 직접 제작하고 꾸민 손일광 관장의 평생의 꿈이 담긴 장소이다. 손 관장은 공학에도 조예가 깊은 패션 아티스트로서 개인 부티크인 ‘A.G의상실’을 열어 창작에 몰두하는 한편, 예술에서 추상적인 작가정신 과시보다는 현실에 밀착된 실천과 표현의 요소를 먼저 찾아낸 아티스트로 꼽힌다. 또한 국제복장학원의 최경자 선생을 사사한 인재로서 국내 최초의 아방가르드 가두패션쇼를 기획하고, 1968년 제 1회 무역박람회 의상콘테스트의 최우수상을 수상하며 연예인들의 무대의상 제작, `88서울올림픽 개최기념 로봇의상 디자인과 같은 인상적인 활동을 보여 왔다.

당대의 트렌드와 패션요소를 기록하는 종합예술로 출발해, 마침내 미술과 과학이 조화를 이룬 설치미술을 경치 좋은 산자락에서 구현하게 된 손 관장은, 올해 5월 24일 개관 4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해 자유로운 영혼으로 뭉친 창작집단 ‘제 4집단’과 ‘이목회’ 활동으로 친분이 두터운 지인들과 멤버들을 초대하기도 했다. 더욱 새로워질 노랑다리미술관은 추억의 물건들로 작품을 제작해 설치하고, 수많은 작품들과 수집품들이 수목원처럼 사계절의 자연과 정성들여 조경돼 시기별로 피어나는 식물들과 어우러져 미술관의 밝은 미래를 예고한다. 또 작은 공원에서의 생생한 경험은 도시의 설치미술을 벗어나 내면의 휴식을 찾기에 충분하며, 연중무휴 운영되는 자연 공간에서 음료 한 잔과 함께 평소 접하기 어려운 노스탤지어와 예술성을 느낄 수 있어 이색 카페탐방으로도 인기가 높다.

뮤지엄 갤러리가 아닌 국내 1호 ‘뮬러리’, 미술이 대중들 곁에서 호흡하는 창작의 유토피아

손 관장이 직접 작명해 상표권등록을 마친 ‘뮬러리’ 란 뮤지엄과 갤러리의 합성어로, 예술과 인류의 근현대사의 발자취, 그리고 과학에서 착안한 오브제들이 여기에 있다. 손 관장은 AM라디오, 수공타자기, 미싱, 고무신, 연탄, 수제 모카포트, 알루미늄 캔, 옛날 동전 등 20세기에 등장한 추억의 앤티크 혹은 현재까지 이어지는 물건. 20세기말을 풍미한 구형 휴대전화 등을 작품 전시 소재로 삼았다. 그리고 정원과 산책로, 건물로 이어지는 현대 생활가전에 채색해 재창조한 100여 점의 테마작품들을 설치미술로 제작해, 카페 이용객들에게 인기 있는 <첨성대>를 비롯해 수저를 모은 콜라주 설치미술 <수조>등이 유명하다.

그 중 손 관장이 대표적 랜드마크로 꼽는 16m길이 전주대를 이어 만든 노랑다리는 네덜란드와 프랑스에 이어 고흐의 <앙글루아 다리>를 세 번째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새로운 예술을 창작하면서도 아방가르드함과 대중예술문화와의 접점을 만들어 눈길을 끄는 그의 작품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노랑다리미술관이라는 이름의 뮬러리는 작품의 오브제가 된 물건들을 사용한 세대들에게는 추억을 반추하는 공간이자, 자라나는 세대들에게는 역사의 기록이자 신고전주의적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더욱 좋은 점은 계단과 난간마다, 그리고 문턱의 동물 조형들까지 세심한 감각이 살아 있다는 점으로, 팝아트적인 입술의 문으로 들어가면 실내 벽면에는 키보드, 숟가락, 변기뚜껑, 달걀껍질과 판, 빈 캔들이 기발하고도 무수한 패턴으로 모여서 타일 혹은 벽지의 무늬를 대체하고 있다. 이는 예술이란 먼 곳이 아닌 우리 생활공간에 존재함을 역설하는 것으로, 한국 스포츠캐주얼웨어의 원조, 패션과 연예인의 콜라보, 시스루를 외출복에 도입하기도 한 아티스트 손 관장의 과거 아방가르드적 활약상이 여전히 생동하고 있음을 짐작케 한다. 

자연을 가꾸고 직접 제작한 공간과 작품에서 미래의 예술가들 위한 큐레이팅 계속할 것

노랑다리미술관은 철거지에서 공수한 전봇대를 기둥 삼아 만들었으며, 풀과 나무, 수로와 숲길, 물고기와 새가 노니는 공간이기에, 4계절의 풍광을 담아 하늘공원과 연결되는 나무계단, 실내의 식물들과 작품들을 밝게 비추어주는 유리천장의 아름다움으로도 유명하다. 한편 이처럼 손 관장이 뮬러리 창작에 몰두하는 동안, 함께 일구어 낸 풍기인견브랜드 인견사랑으로 인견을 하이패션·캐주얼아우터로 해외에 선보임에 기여한 부인 이성희 선생의 노고도 컸다고 한다.

이리하여 선사시대 혈거인처럼 붓 없이도 글과 그림이 가능함을 보여주고, 천이 아닌 펄프티슈, 나무로 옷을 제작하며 금속으로 표현한 커튼, 보색 도색된 오브제로 실험성을 보여 준 손 관장은 그러한 예술적 지지를 바탕으로 지난 13년간을 포함한 노랑다리미술관 건립에 향후 7년 계획을 합한 ‘20년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고 한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발명발견의 세계에 영감을 얻어, 노랑다리미술관이 후손들을 위한 예술의 보고(寶庫)가 되기를 바란다는 손 관장은 ‘천재들의 DNA’론을 정립하며 과학에서 영향 받은 작품들을 제작하고 있다. 원소주기율표를 만든 멘델레예프, 행성의 타원형 공전주기를 입증한 케플러, ‘탄산수의 아버지’ 프리스틀리, ‘만유인력’ 이론 창시자 뉴턴은 그의 영감의 원천이자 우상이기도 하다.

일상에서 얻는 의문을 창조로 승화하는 위대한 과학자들에게 헌정을 아끼지 않는 손 관장은, 미래의 과학자이자 예술가 혹은 우리의 미래를 책임질 어린 세대들을 위해 예술미학을 강의하고, 아이들이 직접 그림을 그려 체험할 수 있는 실습공간도 만들었다고 한다. 실내 나무조형의 인조 나비를 보다 나가면 찬란한 햇살아래 나무를 스쳐 가는 새들의 지저귐을 듣는 공간들도 조금씩 확장되어 가고 있다. 그렇기에 손 관장의 노랑다리미술관은 3천여 평 대지를 과학적 상상력이 담긴 조형과 작품으로 가득 채울 때까지, 아직은 완공이 아닌 열린 상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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